[시니어 커리어 전환 사례] 좋아하는 것을 일로 만든다.

2024. 7. 2.

◈ 초고령 사회에 필요한 새로운 복지미용 사업을 개척하다


[후지타 료, 주식회사 복지 미용실 컷 크리에이트 21 대표 이사]


후지타 씨는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56세에 미용사 면허를 취득하고 58세 퇴직 후 60세에 미용실을 창업하였다. 17년동안 고령자를 대상으로 복지미용 분야에서 점포와 방문 미용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경영자로서 영업하고, 때로는 가위를 손에 들고 고객의 머리도 자른다. 고령사회에서 복지미용의 니즈가 크게 확대되면서 후지타 씨는 매년 더욱 바쁜 생활을 보내고 있다.


대학 졸업 후에 후지쯔에서 영업직에 근무했다. 직장에서 자신의 희망과는 무관하게 계속 열심히 눈앞의 닥친 일만 처리해왔다. 긴 영업인생에서 30대 중반에 6년간 주재한 브라질의 현지법인 책임자를 맡은 적이 있다. 일본과 계절도 시간도 정반대의 나라, 삼바와 축구, 라틴 기질의 사람들과 말도 통하지 않았다. 후지쯔의 브랜드는 브라질에서는 전혀 통하지 않았다. 


브라질에서 귀국 후 국내영업에 집중하다 영업추진 부장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50대를 눈앞에 두었을 무렵, 제2의 인생이 깜박거리며 시야에 들어왔다. 당시 후지쯔에서 관리직 정년이 58세였다. 퇴직 후에는 촉탁으로 몇 년간 근무하고 그룹 관계회사나 거래처 등에 재취업하였다. 사장까지 오르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우수한 동료들이 많았다. 그때 승진경쟁의식을 버리고 정년퇴직 후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촉탁이나 그룹 관계회사의 재취업은 결국 비슷한 일을 하는 것으로 큰 흥미를 가질 수 없었다. 지금까지 일의 연장선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운 것을 찾아 도전하고 싶다는 나만의 ‘정년 후의 미학’을 가지게 되었다. 두 번째 인생을 시작하는 58세까지 약 10년이 남아 있고, 시간도 체력도 충분히 남아 있다고 생각했다.

현역시절에는 마라톤에 빠졌다. 50대까지 호놀룰루 마라톤에 연속 출전해 3시간 40분이라는 최고의 성적도 기록했다. 마라톤 풀코스 4.195km는 매우 길고 힘든 시간이다. 하지만 목표를 달성했을 때 성취감과 보람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 퇴직 후에도 다른 일에서도 같은 행복의 한때를 맛보고 싶었다. 이런 생각에서 퇴직 후에 도전할 수 있는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다양한 산업에서 발간하는 전문지를 확인하고 마케팅 정보를 찾았다. 그러다 우연히 미용업계의 신문기사가 눈에 띄었다. 어느 병원의 병실에 만 틀어박혀 걷지도 않는 부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부인의 머리를 깨끗이 잘라주었더니 몹시 기뻐하고, 적극적으로 걷고, 주변사람들과 대화도 즐기고 있다는 기사였다.


그 기사를 읽고, 미용의 위력을 실감하고 감명을 받았다. 당시 80대에 병상에 있던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도 생각났다. 어머니는 매우 세련된 분으로, 늘 미용실에 가고 싶다고 하셨다. 그 때 ‘내가 갈 길은 이것이다’고 생각했다. 미용사가 되어 복지분야에서 도움이 되는 일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50세에 미용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회사 근무를 하면서 자격 취득에 도전했다. 통신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일에는 영향이 없었다. 1 년에 2회, 10일간의 실기 강습은 필수였다. 근속 30년의 리프레쉬 휴가를 활용하여 수강했다. 대부분 20세 전후의 젊은 사람들 속에서 50대의 시니어가 용기를 내어 참가했다. 처음에는 많이 부끄러웠다. 가위를 손을 움직여 헤어스타일을 만들고 웃는 얼굴을 만들 수 있는 그 신문기사 같은 미용의 매력에 빠져들면서 부끄러움도 잊었다. 미용은 타인을 즐겁게 하는 정말 훌륭한 일이라고 확신하였다.

학과시험은 합력했지만 실기시험이 문제였다. 보통 1년간 미용실에서 실습을 경험하지 않으면 자격은 취할 수 없었다. 회사원에게 그런 시간이 없어 학교에 상담한 결과, 2년간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을 실습시간으로 받아주는 미용실을 발견했다. 실기시험은 2번 떨어졌지만 3번째 도전으로 합격해 미용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미용학교에 입학하여 6년이나 걸렸지만, 최초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기에 기뻤다.

후지타 씨는 정년이 가까운 시점이 아닌 50대에 들어와 퇴직 후 삶을 생각했다. 일찍부터 준비하려는 자세 때문에 일상적인 정보수집과정에서 복지미용이라는 정년 후 새로운 인생테마를 발견했다. 일하면서 취업 10년의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대비해왔다. 


후지타 씨의 손끝은 서투른 편이었다. 하지만 무모한 도전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40대~50대의 열중한 마라톤과 같이 생각했다. 보통 처음 달리기 시작했을 때는 몇 킬로 지나면 숨이 차오른다. 풀코스는 무리라고 생각했지만, 한달 동안 200킬로를 달리고, 적절한 방법을 따르면 1년에 완주할 수 있다. 점차 쌓아 나가는 논리가 통하는 것이 마라톤이다. 미용은 기술이지만, 제대로 계획과 훈련일정을 짜서 습득해나간다면 제품이 될 수 있다. 마라톤 정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다.

무엇을 성취한 경험은 사람에게 자신감을 준다. 미용사라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마라톤 완주경험에서 얻은 차근차근 쌓아간다는 사고였다. 


당시 주택 대출도 있었고, 자녀 교육비도 필요했다. 그렇지만, 아내는 정년까지 제대로 일하고 나서 좋아하는 일을 해도 좋다고 말했다. 가족의 응원이 있었기에 그 자격을 취득했다는 점에서 고맙게 생각했다.

계획대로 58세에 후지쯔를 퇴직하고, 먼저 요코하마시의 한 미용실에서 약 2년간 수업하였다. 그리고 세계 최고의 미용기술을 피부로 느끼기 위해 영국 런던의 비달 사순에 유학했다. 미용인들은 세계적인 헤어 디자이너 ‘비달 사순’ 방식의 미용기술을 배우고자 ‘사순아카데미’를 방문하고 있다. 2001년 귀국 후 염원의 복지 미용실을 창업했다. 그때 60세였다.

그는 목표하는 복지미용은 승산이 있다고 확신했다. 고령화가 빠른 일본에서 고령자 간병에 필요한 인력도 늘어나고, 방문서비스인 복지미용사 수요도 크게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다. 간병이 필요한 사람은 신체의 모발을 깔끔하게 정리하고, 파마를 하며 멋을 부리고 싶은 사람도 있다. 신체적인 문제로 편하게 미용실에 갈 수 없는 고령자가 많아 복지미용사의 방문 비용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실제로 고령자들은 1,000엔의 체인형 미용실과 유리로 장식된 세련된 미용실은 가기 어렵다. 따라서 무료 송영과 방문 미용 서비스를 갖춘 복지 미용실이 확실한 기반이 될 수 있다.

먼저 고령자가 가장 많이 사는 요코하마시 사카에구에 제1호점을 냈다. 비탈이 많은 지역특성이 있어 고령자에게는 무료 송영 서비스는 큰 매력이었다. 이 업계 분석과 마케팅은 사업출발에 도움이 되었다. 30년 이상의 영업경험, 지식은 이렇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개업 초기에는 전단지를 돌려도 좀처럼 신규 고객이 늘지 않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고령자는 크게 늘어나고 있었고, 반드시 복지 미용 수요가 증가한다는 신념으로 경영을 계속하며 조금씩 이용자를 늘려 나갔다. 


현재 70명의 미용 직원이 일하고 있다. ‘복지 미용실 컷 크리에이트 21’은 송영 무료 서비스, 재택 방문 헤어컷을 주축으로 2개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2007년에 ‘출전 미용실 와카나베’라는 회사를 만들어 시설 방문 미용 서비스를 전담하고 있다. 병원이나 개호 시설 등 60개 회사 160개 시설에서 이용하고 있다. 복지미용 분야의 후계자를 육성하기 위해, 전국 네트워크 ‘LLP전국 방문미용실협회’를 설립했다. 같은 뜻을 가진 동료를 늘리기 위해 기술 지도와 강연 활동에도 힘을 쏟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많은 복지미용사가 간병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다. 복지미용사란 간병이 필요한 사람에게 두발 커트와 칼라링 등을 하는 미용사다. 기업과 미용실에 소속되어 간병시설과 의료기관, 이용자 자택에 출장하여 일하는 방식이다. 복지미용사가 되려면 국가자격인 미용 면허증 또는 이용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복지미용사로 일하라면 간병지식과 이용자와 관계방법 등 간병관련 스킬도 필요하다. 


후지타 씨는 개인적으로 시작한 미용을 사업으로 확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감사합니다. 또 올게요"라는 고객의 미소였다고 말한다. 커트기술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커트하는 것이 복지미용의 진수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가위를 들고, 처음에 무표정이었던 고령자가 커트를 끝내고 편하게 웃을 때 미용사가 되어 정말로 좋았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그는 복지 미용의 발전을 위해 체력과 기력이 계속되는 활동을 계속해 나가고 싶어한다. 


다른 회사에서 일하던 아들이 회사에 들어와 전무를 맡아주고 있다. 딸도 ‘출전 미용실 와카나베’의 사무직으로 일하고 있다. 직원과 자녀가 힘을 합쳐 고령자의 미소를 늘리기 위해 현장에서 노력하고 있다.



글쓴이, 이형종 박사(한국ESG 협회 이사)

※ 본 자료는 일본 서적 “50세부터 라이프 시프트 기술”에 소개된 사례를 참고하여 한국의 독자가 이해하기 쉽도록 재편집하여 정리한 내용임





대표

정진아

Email

contact@lapllab.com

본사

서울시 중구 을지로 50, 을지한국빌딩 17층 1702호

사업자등록번호

434-86-02020

통신판매업신고

제 2020-서울중구-1506호

유료직업소개사업등록번호

제2023-3010202-14-5-00022호

© 2020 Life Planning Lab, Inc. All Rights Reserved.

대표

정진아

Email

contact@lapllab.com

본사

서울시 중구 을지로 50, 을지한국빌딩 17층 1702호

사업자등록번호

434-86-02020

통신판매업신고

제 2020-서울중구-1506호

유료직업소개사업등록번호

제2023-3010202-14-5-00022호

© 2020 Life Planning Lab, Inc. All Rights Reserved.

대표

정진아

Email

contact@lapllab.com

본사

서울시 중구 을지로 50, 을지한국빌딩 17층 1702호

사업자등록번호

434-86-02020

통신판매업신고

제 2020-서울중구-1506호

유료직업소개사업등록번호

제2023-3010202-14-5-00022호

© 2020 Life Planning Lab, Inc. All Rights Reserved.